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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린시절 생각나지 않으세요?..달동네 박물관(14.12.16.)

사노라니 2014. 12. 16. 15:51

 

사찰순례를 하다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게 예상치 못한 구경거리다. 이날도 인천 동인천역 근처 향적사를 갔다가 만난 수도국사 달동네 박물관. 입장료도 저렴하게 5백원이였다.

 

날은 추웠지만 하늘은 너무 맑아 기분도 좋았다.

 

입장료 받는 곳 부터 정감이 간다.

 

그래..빠빡머리에 저련 교복을 입고 다녔지..

 

그 당시 최고의 간식거리가 뻥튀기였다.

 

솜틀집을 운영할 정도면 그 동네에서는 먹고 살 만한 집이였다.

 

연탄에 얽힌 사연은 누구나 한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..특히 연탄가스에 의한 사고는 한번쯤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?.. 연탄가스를 마시면 제일 먼저 먹였던게 동치미국물...^.^

 

 

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..그 당시에는 미용실이란게 드물었다. 하얀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목에 천을 둘러주고 깎던 머리..그 당시 비듬은 왜 또 그렇게 많았는지..

 

보통 달동네 골목 모습,

 

그 당시 제일 인기 있었던 친구는..바로 구멍가게를 하는 집 아들이였다. 항상 주머니에 과자를 넣고 다니던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..

 

수돗집..요즘 애들은 이해가 안 갈 것이다..그 당시 돈을 주고 물을 사다 먹었다고 하면..하긴..요즘도 생수는 돈을 주고 사 먹고 있으니...

 

 

그 당시 달동네에는 집집마다 화장실(변소라고 불렀다)이 있었던 건 아니다..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었는데..이걸 공동변소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.

 

 

물지게..기억난다..이걸 메고 아랫동네에 가서 물을 길러 오던 기억.

 

그래도 우리집은 좀 살았었나 보다..장작으로 불을 때던 기억은 안나는 거 보니.

 

보통 집들의 저녁 밥상. 꽁보리밥에 된장찌개..

 

보통 장독대는 옥상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..옥상이 없는 집은 집 옆에 장독을 이렇게 두기도 했다.

 

 

그 당시 앞마당이 있는 정도면 잘 사는 집이였다. 우리 집이 이 정도 수준이 아니였나 생각이 든다.

 

티브이가 귀했던 그 당시. 우리 집에는 티브이가 있었다. 김일 레스링 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다 모여서 티브이를 같이 보곤 했었다. 또 하나 기억나는 연속극이 여로...

 

연탄불로 때던 아궁이 모습..비슷한 거 같다.

 

보통 대문위에 터를 만들어 장독대를 하기도 하고. 빨래를 널기도 하고.

 

화장실은 항상 집 밖에 있었다. 그 당시 우리 집도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., 공동화장실은 사용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.

 

 

연탄을 갈기 위해 새벽에도 일어나야 했고..

 

 

그 당시 인기 있었던 오락 중에 하나가 만화책 보는 거였다..

 

요즘은 사진관도 보기 힘든 거 같다..그 당시에는 동네에 하나씩은 있었던 거 같은데..

 

 

솜틀기계

 

석유난로라고..저곳에 라면 참 많이 끓여 먹었다.

 

 

내가 중학교 2학년까지 스케이트 탔던 기억이 난다.. 그 당시 겨울이면 근처 논가에 물을 얼려서 스케이트장을 열곤 했었다.

 

 

 

음악다방.

 

팥빙수에 쓰이는 얼음을 가는 기계..

 

위에서 바라 본 달동네 모습

 

ㅎㅎㅎㅎㅎㅎㅎㅎㅎ..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라면이다..그 당시엔 라면을 끓일 때 국수도 같이 넣어서 끓여 먹는 경우가 많았다